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 속 등장인물이 먹던 음식의 맛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삭이 좋아했다던 별미의 맛은 어떨지 궁금하지 않나요?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제자가 함께 먹던 생선의 맛은 어땠을까요? 혹시 그 당시에도 디저트가 있었을까요? 시중에 보면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책들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된 것도 있고, 영어로 된 것은 좀 더 많이 있지요. 성경시대의 음식을 재현할 수 있는 레시피들을 가지고 성경요리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 음식에는 레시피에 담을 수 없는 독특한 비법이 있는데, 바로 어머니 손맛이지요. 마찬가지로 성경시대 음식 맛에도 레시피에는 담을 수 없는 비밀이 있는데 바로 환대입니다. 중동의 광야는 뜨거운 날씨로 인해 여행하기에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집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그냥 보내지 않고 반드시 음식을 제공하며 따뜻한 환대로 그들을 맞이하여 주었습니다. 어쩌면 외로운 광야 생활에 사람 귀한 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위험 많은 광야 생활에 한 명이라도 더 적 대신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세 방문자를 극진히 대접한 데에는 이러한 유목민의 환대 문화도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창18:1-4). 어쨌든, 중동 지방은 고대나 지금이나 이방인들을 향한 따뜻한 환대가 자연스런 곳입니다. 음식이란 이와 같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해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데에 귀중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성경에서 음식은 영적인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그들의 삶을 직접 챙겨 주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고, 예수님께서도 죄인들의 친구로서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시며 육적인 양식 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이시며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한 주의 만찬에서 보듯, 예수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라는 음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새로운 삶이란 영적인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제사와 신약 시대의 주의 만찬에 놓인 음식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삶으로 초청하시고 따뜻이 환대해 주십니다. 음식에 관한 성경적 관점은 우리의 식생활을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음식에 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쿡방이라고 알려진 요리 프로그램이 TV채널을 점령하고 있고, 심지어 개인 인터넷 방송 등에서는 오로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만을 보여 주는 채널이 인기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가리키는 신종 용어로 Food Porn(음식 포르노)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매개체여야 할 음식이 이제는 개인의 탐욕과 쾌락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 안타까울 뿐 입니다. 식탁을 중심으로 한 환대의 문화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장 성경적인 문화입니다. 우리 교회를 보면, 주방에서 봉사하시는 권사님, 집사님들이 많이 계신데, 그 중에 한 분이 저에게 하신 간증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분 말씀에 따르면, 자신은 원래 음식을 잘 할 줄 모르는데 음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음식을 하니 사람들이 맛있게 음식을 드시며 행복해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분의 음식을 보면, 음식을 먹는 사람의 기분까지 배려하는 세심한 정성이 보입니다. 그분이 음식을 단지 배고픔을 면하는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매개체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음식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까운 이웃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환대로 그들을 맞아 주어야 합니다.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연습해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새가족들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따뜻하게 환대하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목장 식구들끼리 식사나 차를 함께 할 일이 있을 때 새가족이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여러분의 친구를 모임에 초대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의 구제 및 선교 사역을 통해 타문화권의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예수님 사랑의 따뜻함을 은연 중에 그들에게 흘려 보내 보세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예수님을 향하여 돌처럼 굳었던 불신자들의 마음이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조금씩 부드러워져 그들을 구원하시는 말씀의 씨앗이 그들 마음에 뿌리 내리고 구원의 열매를 거둘 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 허창도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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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 공동체이며 교회의 선교 방식은 공동체적 선교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청년들을 데리고 전 노숙자들이 임시로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수입이 아예 없거나 낮은 임금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늘 부족하다고 하는 몇 가지 생필품과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를 조그만 봉투에 담아 47가정의 문을 노크합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른 그들이 우리를 불편해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세 번 방문을 하니 어느샌가 우리를 친구처럼 대해 줍니다. "우리끼리 너희 이야기 많이 한다", "기다렸다", "언제 또 오니?" “너희 교회에 한 번 가고 싶다” 등의 이야기를 해 주며 우리를 반가워하고 몇 마디 주고 받는 인사말 가운데 자신의 삶의 이야기도 넌지시 덧붙이곤 합니다. 누군가에게 환영 받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큰 은혜라는 것을 이들을 통해 느낍니다. 물론 여전히 집과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닫힌 문 너머에 있을 그들을 바라 보는 우리의 마음이 이제 그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제의 방문을 준비하며, 그제 아침, 그들의 커피 하워에 다녀왔습니다. 몇달 전 처음 만났을 땐 도무지 어색함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짧은 영어로 농담도 섞어 가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왔습니다. 친구가 되어 간다는 것, 그것은 서로에게 정말로 좋은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개인 대 개인의 우정이 아니라 공동체 대 공동체의 우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 중에 누가 가더라도 아마 그들은 우리를 친구처럼 대해줄 것입니다. 친구는 서로 도우며 함께 삶을 나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존재이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은 우리도 그들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우정이 더해가다보면 언젠가는 혹시라도 급한 도움이 필요할 때 주저하지 않고 바로 연락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친구같은 교회 공동체가 되어 있을 줄 믿습니다. 선교적 공동체의 공동체적 선교가 과연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 될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시작한 이 사역이 조금씩 조금씩 주신 소망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 허창도 전도사 |
Author
김상범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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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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