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One for All and All for One)란 말은 뒤마의 소설이자 할리우드 영화로도 만들어진 ‘삼총사’에 나오는 모토입니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협동과 인내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이들에게 꼭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이상적인 교회에서 서로 섬기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교회를 영적인 가족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요, 한 몸인 지체들이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돌보는 공동체입니다. 이런 상호 의존성 이야말로 교회가 가장 교회 스러워질 때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청년부 뿐만 아니라 교회안에는 다양한 사역들이 존재합니다. 각 사역들은 섬기는 사람들이 각자의 은사에 맞게 섬기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렇게 할 때에 사역이 힘들지 않고 보람되며 더 많은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사역 중에서 특정한 은사를 가진 사람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해야만 하는 사역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새가족 사역이고, 우리 청년부의 경우는 이와 더불어 수송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새가족 사역의 경우에 맞춰 예를 들자면, 만약 어떤 가정에 막내가 태어났다고 합시다. 그런데 형제들이 막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지 않고 동생에게 무관심 하거나 심지어 질투하고 미워한다면 태어난 이 아이가 과연 충분히 사랑받는 환경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는 부모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온 가족의 사랑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마찬 가지로 한 교회에 새로운 가족이 오게 되었는데 목회자나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 새가족은 불행한 환경에 있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가족 사역은 새가족팀만의 사역이 아니라 온 성도가 함께 새가족 팀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새가족을 맞이해야 새가족이 교회로부터 따뜻한 인상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수송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청년 중에는 차가 없어서 교회에 올 때 라이드가 필요한 청년들이 제법 있습니다. 또한 새로 오신 분들도 라이드가 꼭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정해진 수송팀원들만으로 모든 필요를 채우기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송 사역도 라이드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내가 수송팀원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사역에 참여할 때 제대로 된 사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수송팀은 라이드 제공이 가능한 분들을 라이드가 필요한 사람과 연결 시켜 주는 일과 캠퍼스 밴 운행을 관리하는 일 등의 행정적인 일을 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라이드 제공은 가능하면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가 올해 후반기나 내년초에는 새성전으로 이사를 하게 되기 때문에 수송 사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늘 예배 후에 수송팀원과 라이드 제공가능한 분들을 신청받으려고 합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만의 일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역임을 이해해 주시고 함께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갈라디아서 6:2 - 허창도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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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저는 중요한 미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팅의 결과가 앞으로 저와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긴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결정은 미팅을 주관하는 이들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결정에 조금도 영향을 미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용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스마트폰을 꺼내 평소 사용하던 묵상 앱을 실행했습니다. 그 날 묵상 나눔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Marking Time”. 이 말은 군대용어입니다. “Mark Time, March”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행군을 하던 군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행군을 해야합니다. 우리 말로 하면 “제자리 걸음, 앞으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군인들은 잠시 멈추어 있지만,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명령을 기다리며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발은 여전히, 비록 제자리이지만,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쓴 저자는 성경에서의 “기다림”이 이와 같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때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기다려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 진단, 인터뷰 결과, 시험 발표 등의 경우와 같이 말이지요. 기다리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기다려야 할 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두려움이나 무능력 가운데 빠지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며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나 주의를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의 기다림이라는 것이지요. 본문인 시편 말씀을 읽고 묵상 나눔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딱 이 말씀이 내게 필요했어.” 너무 기분이 좋아 아내에게도 바로 링크를 보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막연하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다 아시고 지금 우리가 필요한 말씀을 이미 주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들으려 하느냐 듣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있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하나님 말씀에 귀기울이는 삶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하시는 대로 바로 순종할 수 있도록 제자리 걸음을 하며 늘 준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우리는 날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듣고 “그래 딱 이 말씀이 내게 필요했어”라고 무릎을 치며 놀라는 일이 우리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도되는 삶은 정말 흥미진진하기만 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시 25:4-5) |
Author
김상범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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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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