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로마제국은 당시 ‘팍스 로마나' 라고 하는 소위 로마의 평화 정책을 통해서, 식민지의 언어, 문화, 종교, 풍습등을 포용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로마 통치아래 있었던 이스라엘도 이러한 정책 아래, 유대인의 문화와 관습 대부분을 수용하고 크게 간섭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고 기록된 이 전례 또한 유대인 사이에서 행해지던 관습으로서, 그 관습대로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법정에서 재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한 죄수를 놓아주는 풍습이 행해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는 선을 베풀듯 누군가의 생명을 풀어주었다고 그 의미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우리의 생명의 댓가를 지불해주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요,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진 그분을 감사함으로 믿고 따를 때 뜻깊은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의 관습은 오히려 공의를 거스르는 일이 되고 바라바와 같은 사악한 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부조리한 관습이 아니었나 생각되었습니다. 과연 죄사함을 받은 바나바가 감사하기는 했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공의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것이 값싼 은혜의 사건으로 치부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에게 일어난 십자가의 사건은 어떠한 일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은 부조리한 사건이 아니었나…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일어난 엄청난 사건이 아닌가… 죄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향하던 우리에게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불해주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허락해 주셨다는 것이 과연 우리가 받은만한 은혜였는지, 갚을 수는 있는 은혜인지,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는 은혜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바라바가 유명한 죄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댓가없이 놓임을 받았다면, 우리 또한 아무 댓가없이 아무 공로없이 영생을 얻게 된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라는 것을 다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신 대속의 은혜를 다시금 묵상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이 우리의 구원이며, 유일한 소망임을 인정하고, 하루를 살아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귀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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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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