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인정한 사람입니다. 사울의 몰락한 왕조도 이제 시작하는 자신의 왕조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그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정적, 사울의 죽음을 자신 혼자 슬퍼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를 지어서 백성들에게 함께 부르도록 한 원동력입니다. 17-18절은 노래의 서론에 해당합니다. 노래의 저자가 다윗 자신이고, 추도 대상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라 밝힙니다. ‘슬픈 노래’는 원어에 따르면 죽은 자를 애도하는 노래, 곧 애가를 말합니다. 19절에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표현하며 “어찌하여 두 용사가 엎드러졌는가” (원어적 해석)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 탄식이 다윗의 애가에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19, 25, 27절) 중심 구절입니다. 20-21절에 다윗은 두 용사의 죽음을 블레셋에게 알리지 말라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상실해 버린 내가 속한 공동체 형제 자매를 향한 애통하는 능력을 꼬집고 있습니다. 22-23절에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동등하게 평가하며 죽을 때도 갈라지지 않았다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에서는 결국 나의 원수도, 나의 적도, 혹은 친구도 다 무의미해짐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쓴 히브리시에 담긴 애가의 해학이며, 또한 이 시대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슬픔의 미학입니다. 24-25절에 사울의 통치기간 중 이스라엘이 누린 안정과 번영을 칭송하며 그런 사울의 업적을 생각하고 통곡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후렴구가 등장하고, 추모의 대상이 요나단 한 사람으로 집중하며 그의 다윗을 향한 경이로운 우정을 칭송합니다. 오늘 다윗의 애가를 통해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 두 가지 교훈:
오늘 삶의 자리로 나아가실 때, 부르신 그 곳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아버지의 상한 마음과 눈물 따라 애통하는 은혜를 배우고 또한 확증하는 복음의 능력이 충만한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인정함으로, 예수님의 눈물을 따라, 성령의 탄식으로 애통하는 은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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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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