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오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 행 23:26) 의 권위 아래 소집된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 있습니다. 자신을 변론하며 “…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1절) 말합니다. ‘섬겼노라’ 로 번역된 헬라어는 ‘폴리튜오마이’ 인데 (여기서 정치를 뜻하는 영어 단어 politics가 유래됨) 직역하면 ‘시민 노릇하다’, ‘시민으로서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 ‘양심’은 ‘무언가를 통하여 깨닫다, 전체를 보게 되다’ 라는 뜻입니다. 양심을 창문에 비유한다면, 빛 되신 말씀이 양심의 창의 밝기에 따라 다르게 들어오듯, 오늘 나의 삶에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여 살아가고 있느냐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산헤드린 권력 수뇌부는 그들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 (딤전 4:2)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욕심대로 해석하고 바울을 심문하며 모독합니다. 이 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바울은 기지를 발휘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믿음을 선포함으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이에 교리적 논쟁을 일으킵니다. 두 분파의 큰 논쟁으로 말아 천부장 루시아가 군인을 명하여 바울을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갑니다. 그 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11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처음 대면한 순간부터 3차 전도여행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들은 바울이지만, 이제 이 땅에서 그의 달려갈 길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주님께서는 이토록 바울에게 가깝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반드시 로마로 갈 것임을 확인 시켜주시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11절) 라는 말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곧, 로마에서도 이와 같이 복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고난이여만 합니까? 우리가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을 가장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분만 전적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바울은 자신이 왜 그토록 예루살렘에서 오해를 받고 고난을 받아야 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을 증거케 하기 위한, 또한 그 곳에서 자신의 사명을 마치게 될 것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해 준비하신 ‘리허설’ 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 날, 주님 앞에 서서 주님 얼굴 마주하는 그 영광스러운 날에 “주님, 천국시민으로 살다 왔습니다!”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난 가운데 주님만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천국 시민의 삶 살아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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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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