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시 어린 나귀를 사용하는 데 치밀한 준비를 시켰던 예수님은 유월절 준비와 관련해서도 제자들에게 아주 치밀한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한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은 그의 고난의 신학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만찬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인 출애굽 사건을 상기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 기념이 아니라 메시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의 최종적은 구원 사건을 예고적으로 기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베푸는 빵은 새 언약 백성을 위해서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몸을 암시하고, 나누어 주는 포도주 잔은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저주를, 새 언약 백성에게는 구원을 가져오는 피로 맺은 언약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말미암아 열리는 새 언약의 시대를 예비적으로 여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통해 눈앞에 다가온 십자가의 고난을 제자들에게는 구원과 축복의 원천과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를 배반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사도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 차리지 못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행합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을 기억하고,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과 하나가 되는 그리고 세상에서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주께서 가신 길을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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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지도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넘기려 정탐들을 보내며 책잡을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중 가룟 유다가 직접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도를 의논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하게 된 유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절: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예수님은 유월절은 지내신 후에 십자가의 길로 가십니다.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최후의 만찬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을 뜻합니다. 속죄의 희생양이 되실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만날 사람을 알려 주시며 유월절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11절: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 주인은 큰 다락방을 보여주며 거기서 유월절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유월절을 보낼 장소가 이미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13절: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말씀대로 만나’ 라는 구절이 와닿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났고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갔으며 그 집의 주인을 만나 객실이 어디 있느냐 물으니 다락방이 준비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만나’ 이 모든 일이 준비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대로’ 우리를 ‘만나’ 주신 분입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사건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매일 주님을 말씀대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말씀으로 주님을 만나시길 소망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실제적으로 존재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가 세상의 종말입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의 재림을 묘사하십니다(단 7:13).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이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볼 것입니다. 성도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속량(redemption)이 가까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성도의 구원이 완성될 것입니다(영화, glorification). 주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무화과 나무의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왔구나 자연히 알듯이, 우주와 세상에 징조가 발생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기 ‘이 세대(this generation)’는 예수님 당시를 가리키기도 하고, 넓게는 신약 시대(교회 시대) 전 기간을 가리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종말의 때를 앞두고 성도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종말의 날(주님 재림의 날)은 덫과 같이 임할 수 있습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장차 올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재림의 주님(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원으로 나가서 쉼의 시간을 가지십니다. 모든 백성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나아갑니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29-31)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6)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깨어 있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게 하소서. 삶 속에서 일과 쉼의 균형을 이루게 하시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힘쓰게 하소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십니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고,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포로가 되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입니다. 이 두려운 일, 곧 하나님의 심판은 A.D. 70년 로마 군대의 예루살렘 침공과 파괴로 이루어집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의 죄, 특히 메시아 예수님을 죽인 죄에 대한 심판으로 시행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박해의 시간은 오히려 전도의 기회가 됩니다. 성도들은 권력자들에게 박해를 받고, 가족과 친척과 벗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주님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박해와 핍박은 성도에게 간증(증거)의 기회가 됩니다. 성도는 위기의 상황에서 무엇을 변명할 지 궁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대적을 반박할 수 있는 구변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우리가 박해와 핍박 속에 있을 때, 주님은 우리의 참된 피난처이십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17-19)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0-22)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점점 가까워지는 종말의 때를 생각하며 더욱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종말의 때를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위기의 상황에서는 할 말을 가르쳐 주시는 좋으신 주님을 의지하며 인내로 승리하게 하소서.” 오늘 본문은 바로 앞에 언급된 명예욕으로 가득찬 서기관들과 진정한 신앙과 경건을 간직하고 있는 가난한 과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사람들에게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과부가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로 부요한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부는 너무 궁핍하지만 두 렙돈을 헌금으로 넣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과부의 헌금을 극찬했고, 모든 사람이 헌금한 것보다 과부가 더 많은 헌금을 했다고 사람들 앞에서 칭찬하십니다. 그녀의 헌금은 그녀의 생활비 전부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과부를 칭찬하십니다. 예수님은 헌금의 양이 아니라 질을 중요시하셨습니다. 헌금의 가치는 양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신앙과 경건의 질로 따져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신앙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전히 성전에 계실 때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을 가리키며 자랑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이 언제 있을 것이며 그 징조가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이 질문의 답을 말하기전에 제자들이 미혹에 당하지 않아야 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으로 오늘 본문은 마무리됩니다. 주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정결하게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과부가 마음을 다한 것처럼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과부의 헌금을 칭찬해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게 하여 주시고, 늘 신실하게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반석위에 세워진 믿음을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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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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