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30)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7) 어제 본문인 증거궤와 속죄소는 지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이었다면, 오늘 살펴볼 진설병 상과 등잔대는 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입니다. 먼저 진설병 상 (떡상)을 살펴보겠습니다.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진설병 상이 그 크기나 형태나 모양 면에서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증거궤 만큼이나 진설병 상을 중히 여겼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묵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증거궤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인 진설병과 같다는 점입니다. 즉, 말씀은 ‘영의 양식’ 입니다. 하나님은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30)” 라고 말씀하시고, 우리가 매일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소의 삶, 즉 천국의 삶은 말씀의 양식을 먹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우리의 양식이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는 우리의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가 풍족함을 누리며 그 가운데서 기쁨을 마음껏 누리도록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시고, 우리 삶의 모든 필요를 성실하게 채워 주시는 진정한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의 떡이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를 위해서 보내 주신 분이십니다. 나의 생명의 시작도 하나님이요, 구원의 기초도 하나님이요, 삶의 기반도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성소의 기구는 등잔대입니다. 등잔대는 순금 한 덩어리로 제련하여 만들었습니다. 등잔대의 빛은 하나님, 진리, 깨달음 등을 상징합니다. 일곱 등잔대는 완전수 7을 나타내는데, 이는 하나님의 충만하고 완전하신 진리의 영을 가리킵니다. 그러한 진리의 빛이 우리 영의 양식인 진설병을 비추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필요한 것을 잘 말해 줍니다. 또한, 등잔대의 형상과 모습은 식물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고 꽃잎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등잔대가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는 아담이 범죄함으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께서 사람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그룹들과 불 칼로 지키셨던 나무입니다. 그 이후, 최초로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친히 임재하시기로 정하신 성소 안에 생명나무를 기억할 수 있는 등잔대를 두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이처럼 영원한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분과의 영원한 교제로, 또 풍성한 교제로, 완전한 연합의 교제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점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새롭게 열어주신 한 주를 천국 소망으로 열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 죄를 단 번에 사하시고, 우리를 성소로 초청 하셔서 그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양식을 풍성히 누리도록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성소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능력 있는 주의 자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0 Comments
인생에 위기가 닥칠때, 그리스도인에게는 항상 피난처가 가까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께로 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항상, 열여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의 지혜를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시며, 그 어떠한 피난처보다도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권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받아주시고 환영하여 주시므로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다윗은 피난처 되신 하나님에 대해 확신하는 두가지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불변하시는 견고한 터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3절) 둘째,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5절) 그 결과로, 정직한 자는 여호와의 얼굴을 뵈옵게 된다고 말합니다. (7절) 다윗은 위험가운데 평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근거를 모두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인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이 견고하신 것과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도우신다는 하나님의 불변하는 속성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속성을 깨닫고 의지할 때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일어서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좋으신 하나님,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인생길이 고단하고 힘들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늘 품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변치 아니 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Psalm 10 is a languished lament. And isn’t it amazing that someone like David wondered where God was? David opens up in Psalm 10 with a question about God’s whereabouts. Psalm 10:1, “Why, O Lord, do you stand far away? Why do you hide yourself in times of trouble?”
And then after explaining the reasons why he is asking why, he closes with another why question in verse 13, “Why does the wicked renounce God and say in his heart, ‘You will not call to account.’” Though some my question his faith in God, I love that he goes straight to God and doesn’t complain to anyone else. David’s modus operandi was to talk with God and not about God to others. Job did a similar thing in Job 13:24 when he cried out directly to God: “Why do you hide your face and consider me your enemy?” As believers, we have an avenue for unloading the hidden turmoil of our hearts. We don’t have to dump on friends and family because we can go directly to God with our questions. If you’re wondering what’s happening or why things are unfolding the way they are, ask God about it. Declare your questions to God. It’s much better to ask God where he is than it is to wear your spiritual smiles and act like everything’s going well when you know it isn’t. But David doesn’t stop with the why. I love the faith progression that takes place in this Psalm. David begins with “why” questions and then lays out his complaints in the middle of the passage. And then we come to the last few verses, where as a result of being honest with God, his commitment to the Lord now goes to the next level. Because of God’s character, we can trust him with our lives. David reminds us that God does indeed see and hear and he indeed cares for his people. God takes in our pain and is the helper of the fatherless, executes perfect justice against the wicked and evil doers, and takes special interest in those who are in deep need. God cares! Prayer: Father God, thank you that you always hear us—even our complaints and why questions. In our doubting and uncertainties, may we always go to you where we can find healing and peace. In Jesus’ name, amen. 시편 10편은 시편 9편에 이어 공의로운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피흘림을 복수하시고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십니다. 시인은 사망의 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호소합니다. 자신이 대적들에게 받는 고통을 보시도록 간청합니다. 시온의 문에서(예루살렘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질 것입니다. 악인은 자기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힐 것입니다. 악인들과 하나님을 잊어버린 열방은 스올(죽음의 세계)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궁핍한 자는 하나님께 잊혀지지 않고, 가난한 자들(상처입은 자들)은 쇠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과 열방은 패하고 심판받게 하시기를,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신들이 한갓 인생뿐임을 깨닫게 하시기를 간청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3-14)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5)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8)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대적으로 인해 고통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악인들이 이기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웅덩이에서 저를 건지소서. 인생이 아니신, 영원하신 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합니다” 시편 9편은 공의로운 심판 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세상에서 성도의 희망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 위해 기이한 일들을 하십니다. 원수들이 이기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물러가고 주님 앞에서 넘어져 망합니다. 주님은 성도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십니다. 의로운 재판관으로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십니다. 원수는 멸망하고 그들의 성읍들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을 위해 보좌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로 세계를 다스리시고, 정직으로 만민을 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압제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고, 환난 때의 요새이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2-3)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7-8)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9)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리고 재판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고난을 돌보시고 환난에서 구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도 주님을 닮아 공의와 정직으로 세상을 살게 하시고, 고통 당하는 이웃을 돌보고 위로하고 구하는 사람 되게 하소서” |
굿모닝! 말씀 산책매일 개인묵상을 위한 말씀입니다. 아카이브
July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