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순금에 비할만큼 존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흔하디 흔한 토기에 불과한, 깨어져도, 내어버려도 그만인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백성들에게 경고하시던 그 하나님의 심판이, 그의 눈앞에서 낫낫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오늘 본문은 죄가 극에 달한 이스라엘의 비참한 모습이, 백성들로부터 지도자들과 왕들에게 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백성들로 부터 돌리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11절의 말씀과 같이, 백성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시고, 시온에 불을 지르시고 그 터를 사르시는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마저도 더렵혀지기 시작했습니다. 12절에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갔다’ 하는 것은 그런 하나님의 위엄이 선포되는 곳마저도, 대적과 원수들에게 짓밟히는 곳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떠나 버린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하 온 세상이 보는 가운데 이러한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은, 그 택하신 선지자들과 제사장의 죄악이 크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부름을 받은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직분으로 불러주신 자들이고 순종과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하는 자들마저 하나님이 애통하시는 죄로 인해 타락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큰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그들의 멸망이 아님을 마지막 절에서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비웃던 에돔은 수치를 당하고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반면에 시온은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22절,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이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시며 우리를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사랑을 베푸시는데, 우리가 엉뚱한 곳을 바라보면서, 엉뚱한 힘을 의지하고 있다면, 그들을 구원하지도 못할 이방 왕들과, 이방 신들을 의지하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져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Life is hard, and the Lord is good. 예레미야애가 3장 전체에 흐르는 역설입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의 기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죽겠다’입니다. 그러나, 3장 전체에 흐르는 말씀의 물줄기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이 ‘죽겠다’는 고백은 ‘주께 있다’로 끝이 남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이 죽을 것 같아도, 우리 주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가 고통 가운데 쏟아놓은 불평 가운데 만나는 지혜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불평을 기도로 받으신 이유입니다. 55절에 “깊은 구덩이”는 예레미야가 처한 고통을 한마디로 드러낸 표현입니다. 구덩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을 상징합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끌어올려 줘야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예레미야 38장에서 예레미야는 이를 몸소 체험함).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예수님과 함께 사는 부활이 있다는 말입니다. 구덩이에 빠졌다가 건짐받은 예레미야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됩니다. #1. [과거]에 체험한 말씀 (vv. 55-58) 1장과 2장 마지막에 기록된 기도와 달리 (“여호와여 보시옵소서”로 시작) 3장에서는 예레미야의 기도가, “여호와여 …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로 바뀝니다. 수렁에서 나를 끌어올리신 예수님을 만난 인생은 예수님 이름 하나면 충분함을 깨달아버린 인생입니다. 57절에 “…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말씀은 예레미야가 첫 소명을 받을 때 받은 말씀입니다 (렘 1:8). 말씀을 경험한 예레미야는 상황을 뛰어넘어 믿음의 선포를 합니다: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58절) #2. [현재]역사하시는 말씀 (vv. 59-63)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59절). 원통함을 풀어주셨다고 믿음의 선포를 하였지만, 예레미야의 현실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나를 대적하는 자는 나를 모해하고 조롱합니다 (60-63절).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 가운데 주께서 보셨나이다 (60절), 들으셨나이다 (62절), 주목하여 보시옵소서 (63절)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3. [미래]에 선포하는 말씀 (vv. 64-66) 예레미야는 여전히 불평합니다.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향해 미래에 임하게 될 저주를 선포하는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불평을 기도로 받아주십니다. 아니 오히려, 더 해보라! 내가 들어주겠노라! 말씀하십니다. (참조: 렘 33:3). 나를 징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면 그 상처를 싸매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내 고통의 대한 유일한 답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 길입니다. 매일 ‘죽겠다’ 하지만 결국 ‘주께 있다’ 로 끝나는게 우리 믿음생활입니다. 믿는 우리에게 불평은 골칫거가 아니라 기도거리 라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 깊은 구덩이 같은 인생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만 부르짖음으로 이전에 경험치 못한 크고 비밀한 일들을 경험케 되시는 AKPC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고통스러운 인생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 의지하여 부르짖게 하심으로 ‘죽겠다’가 ‘주께있다’로 깨달아지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민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끌어 안은 예레미야 애가의 저자는 예레미야애가 3장 19절에서 54절을 통해, 민족의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여전히 은혜를 베풀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때에 이 고난으로 부터 구원해 주실 거라는 확신 속에 소망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망 가운데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 때를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자신이 하나님께 저지르고 있는 죄가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 보고 진정한 눈물의 회개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잠잠히 기다리며 우리의 고난의 원인이 되는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두손과 우리의 마음을 하늘을 향해 높이 들고, 눈물로 회개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받아 주시고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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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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