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에 이어 일본에서 2년 연속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일본은과학 분야에서만 총 22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합니다. 2000년 대 이후로만 계산을 하면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라고 하는 군요.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가지타 다카아기 (57) 일본 도쿄대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고등과학원(KIAS)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일본 과학계가 지금 위축되고 있으며 지금 같은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20년 뒤에는 일본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너무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의 말을 들으니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에 따르면 21세기 이후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은 1980, 90년대의 연구 업적을 받은 것들인데, 당시는 일본의 경제 사정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들이 시간을 많이 가져 연구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는데, 대학 순위에 따라 정부가 예산을 주기 때문에 교수들은 경쟁에 시달려야 하고 대학원생들은 장학금 받기가 어려워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 대출금과 이자 갚기에 허덕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상위 1%의 논문의 수가 정체되어 있고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의 수가 급감하고 있다고 하는 군요. 요약하자면 학자들이 경쟁에 시달리느라 너무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게 일본 과학자들만의 고민이겠습니까? 모든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고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 신앙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너무 바빠서 묵상할 시간도 없고 기도할 시간도 없다. 우리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성을 사용해서 하나님 말씀을 깊이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들으며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늘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공부도 하고, 신앙 서적도 읽고 기도하면서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안에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면 나의 신앙 생활은 늘 하던 대로하는 모습에 멈춥니다. 전통과 관습이 말씀의 실제적인 적용보다 더 중요하고 내 뜻과 내 감정이 하나님의 뜻 보다는 더 소중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보다 세속적인 욕심을 좇는 삶을 살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해 집니다. 너무 바빠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연구의 결과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어느 일본 과학자의 고민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말씀을 깊이 묵상할 시간이 없어 삶에서 말씀의 열매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 허창도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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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회자 코너는 지난 2015년 8월 16일 Our Daily Bread 에 실렸던 Julie Ackeman Link 목사님의 글로 대신합니다.
페니실린의 발견은 의료부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1940년대 이전에는 박테리아로 인한 감염은 종종 치명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해로운 박테리아를 죽이는 페니실린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페니실린의 효능을 알아내고 널리 쓰이도록 개발한 사람은 1945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오래 전부터 다른 소중한 킬러가 박테리아를 죽이며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조용한 킬러는 바로 백혈구입니다. 이 성실한 일꾼은 우리의 몸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 침입을 막아냈는지, 또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이 하는 그 많은 좋은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사받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자주 비난을 받으시지만, 잘 풀리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는 감사받지 못하십니다. 매일 매일 사람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직장이나 학교로, 혹은 시장으로 차를 몰고 갑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가족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고로부터 얼마나 많이 보호해 주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는 “하나님은 어디 계셨지?”라고 묻습니다. 하루하루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조용히 행하시는 모든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면 (이사야 25:1) 내 요구사항의 목록보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목록이 훨씬 더 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Author
김상범 전도사
Archives
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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