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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정을 통한 믿음
본문: 막 2:1-5 하나님은 우리를 함께 교회로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한 가지 공동점을 갖는 우리는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섬기며, 기도와 권면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끔찍이 생각하시는 것을 느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우리 눈에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불완전한 공동체인데 하나님은 교회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 크심을 말씀은 증거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는 “내가 피로 산 교회를 보살피라”며 강조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피 흘리셔서 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셔서, 우리 모두가 권면을 통해 서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기 원하십니다. 교회로 모일 때 권면과 거룩한 삶을 나누어야 함은 이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주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를 가르치며, 리더와 일꾼을 세우고, 과부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또, 병자를 케어하고, 불신자에게 나아가 전도하며, 선교사를 파송하고 돕는 일을 하기를 주님은 바라고 기대하십니다. 이런 일들을 교회는 무슨 힘과 권세로 할 수 있냐면, 주께서 교회에게 우주의 권세와 천국 열쇠를 주셨기에 주님 주신 능력으로 하는 겁니다. 교회를 이루어 갈 때는 필연적으로 관계가 형성됩니다. 신앙생활은 독불장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같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생활을 잘 하려면 동료관계, 친구관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한국 리서치 센터 연구결과에 따르면, 20대 청년들은 진로, 시험, 결혼 등등 많은 염려와 걱정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런 고민을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풀어가고 있습니다. 즉,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비슷한 또래 집단과 함께 고민하며 풀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2장도 친구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정황상 그는 원래는 정상인이었다가 어느 순간 중풍병에 걸린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병은 젊은 그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그에게는 정상인 친구 네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괜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뢰할만한 친구들이었고, 자기 친구가 병에 걸려도 끝까지 우정을 이어가는 듬직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 친구들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인접 마을에서 예수께서 나병환자도 고쳐 주신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나병을 고치실 수 있다면 중풍병도 고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픈 친구를 잘 설득해서 예수님께 데리고 나옵니다. 환자를 들고 이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뜨거운 날씨에서는 더더욱 체력적 부담이 되는 일이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 친구를 예수님이 계시는 집에 데려옵니다. 그러나, 그 집에 도착하자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그들은 입구 쪽으로 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보통은 이런 상황이면 포기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여기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지붕으로 들어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기준으로 봐도 굉장히 래디컬한 제안이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지붕을 뜯어낸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행동이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다칠 가능성도 높은 비이성적인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라도 해서 그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병든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려 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기적은 상황을 초월하는 믿음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결국, 그들은 어렵게 그 친구를 지붕을 통해 예수님 앞에 내려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안에서 보셨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곧 친구들의 진정성 있는 믿음과 친구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알아 차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여,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먼저 그 환자의 진정한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진짜 정체성, 즉,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후에 그의 중풍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이 중풍병자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환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사자의 믿음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시지만,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주변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진정한 믿음의 친구들을 통해서 예수님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만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힘든 일을 겪고 있거나 너무 지쳐 있을 때에는 예수님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믿음의 친구가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서로에게 좋은 믿음의 친구가 되어주는 장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이런 친구가 있으십니까? 여러분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이런 친구인가요? 이것이 교회입니다. 비록 완전하지 못해도 서로 서로 믿음의 친구가 되어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이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이런 귀한 믿음의 친구가 되는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내 신앙생활 경험 중에 나의 신앙이 아닌 내 친구의 신앙을 위해서 가장 열심히 노력했던 경험을 나눠보세요. 2. 나는 친구들의 사랑의 권면을 잘 받아들이는 편인가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3. 좋은 믿음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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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함 “3” 가치관 훈련
본문: 야고보서 4:1-10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야고보서는 매우 실천적인 말씀입니다. 그 중에 오늘은 가치관 훈련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가치관은 좋음과 옳음과 바람직함을 판단하는 관점입니다. 이에 따라서 인생의 큰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가치관을 훈련할 필요는 성경적 가치관을 안다고 해서 정립되기 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서 나쁜 말과 나쁜 생각들이 계속되는 저변에는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두 마음은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의 마음, 즉 하나님과 세상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여전히 비교 우위를 얻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싸워서라도 내가 원하는 바를 달성해야 하는데, 이것이 정욕의 마음입니다.(1)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구해도 응답 받지 못합니다.(3)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할 때의 마음을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 중에 하나님을 자신 있게 선택하려면 성경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타락 이후의 세상은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죄성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의 세상은 깨어진 세상(The broken world)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망쳐 놓은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오셔서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고, 다시 오셔서 모든 창조세계를 에덴의 상태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중간기를 사는 현재의 세상은 깨어짐과 하나님의 통치가 혼재된 상태입니다. 만약, 우리 삶의 장소가 하나님의 통치가 통용되는 곳으로 바꾸면 그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이 세상은 양쪽 어느 쪽으로든지 변화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이 확실하게 자리잡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나가면 기독교인들도 혼동을 겪을 수 있습니다. 만약, 신앙인이 신앙을 버리고 세상적 가치관을 선택하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 가운데 살게 한 것은 세상과 동화되라는 목적이 아닙니다. 세상의 깨짐을 보고 믿는 자로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 준비했다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권위가 생기게 되면 그 때 내가 속한 사회를 바꿔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길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잘 믿는 목적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기 때문이신지요. 신앙과 성공의 상관관계는 매우 복잡한 다이내믹이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성경적 원칙을 살펴봅시다. 먼저, 하나님은 크리스쳔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복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다만, 성공을 주시는 목적이 우리의 호위 호식이나 어떤 보상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전파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쳔이 성공했을 때는 겸손해야 하고, 성공을 주신 진짜 이유를 알아서 그것을 이뤄야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성공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분명히 세상적 성공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이것을 동일시하면 우리가 흔히 부르는 기복신앙 혹은 번영신앙이 됩니다. 이런 부류의 가장 큰 문제는 성공을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니 결국 하나님보다 성공을 더 우선순위에 두게 되는 데에 있습니다. 성공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요. 예수님조차 세상적 관점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삶을 사셨습니다. 신앙인이 추구해야 하는 성경적인 성공관을 함께 살펴봅시다. 첫째, 성공을 결과보다 과정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고 영광 받으시는 것은 우리의 자세, 진실한 마음, 성실한 태도입니다. 이는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요셉이 옥중에서도 형통하였다고 평가받은 것은 그의 자세와 태도가 옳았기 때문이지, 결과적으로 총리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둘째, 성공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신 성공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돈이나 직위나 건강을 주셨다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할 목적이 있으신 것입니다. 즉, 사명으로 성공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자세를 견지해서, 상황을 넘어 감사와 자족하는 마음, 비굴하지 않은 마음을 유지한 채 하늘의 상급을 소망해야 합니다. 성공이 사명이라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사명을 맡기기도 하십니다. 예를 들어, 누구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런 경우 세상적 성공은 경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반드시 하늘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준비하실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고 다 풍족하거나 높이 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삶의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삶에 적절한 은혜를 베푸시고 사명도 주셔서, 우리의 순종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세상의 성공을 어떻게 바라볼지, 내게 허락하신 일평생을 통해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지를 잘 정립하는 복된 주의 자녀 되시길 축복합니다. 나눔 질문 1. 성경이 말하는 세계관에 대해 여러분이 이해한 바를 함께 나눠보세요. 2. 오늘 말씀을 들으며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의 차이점을 이해한대로 나눠보세요. 3. 그렇다면 여러분의 성공관은 세상적인가요, 성경적인가요? 오늘 말씀을 듣고 변하기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포함해서 함께 나눠보세요. 4. 오늘 나눈 세계관, 성공관, 인생관이 정립된다면 나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
제목: 행함 “2” 마음 훈련
우리는 야고보서를 통해서 실천적 신앙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살아있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마음 훈련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는 우리 마음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하나는 땅에서 온 마음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온 마음입니다. 땅에서 온 마음은 남을 시기하는 마음과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 스스로 높이는 마음입니다. 하늘에서 온 마음은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님이 내주하셔도 두 생각이 다 내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의지적으로 땅의 생각은 버리고 하늘의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 마음 훈련의 핵심입니다. 먼저, 야고보는 땅의 생각이 들 때 말을 아낄 것을 강조합니다. (14) 일단, 나쁜 마음이 들었을 때 말만 안 해도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 이유가 남을 시기하고 나만 높이는 마음이 진리가 아니며, 악한 세력이 불어넣어준 생각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진리의 근원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는 그런 마음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쁜 마음을 제 때 비우지 않으면 그 생각이 반드시 좋지 않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16) 시기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비교의식은 우리 마음에 평안과 관계성을 해치는 포도밭의 여우와 같습니다. 신앙이 성숙하려면 우리 안에 남과 비교하려는 마음부터 관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각자가 누리는 행복과 환란의 무게가 꼭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성 앞에서 보자면 그 차이는 미미합니다. 더구나 주께서 베푸실 영생의 축복과 천국에서 누릴 영광이 너무나 값지고 커서 이 땅에서의 작은 차이를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거지 나사로 이야기, 눅 16장) 성경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이며, 이 땅은 잠시 왔다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말씀합니다. 잠시 머무는 곳과 영원히 거할 곳 중에서 어느 곳에 더 집중할 지를 아는 것은 지혜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3) 그 다음으로 하늘의 마음,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을 가꿔 나가야 합니다. 사실 몰라서 못 지키기 보다는 훈련이 안되었거나 선한 마음을 가질 동기부여가 적기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축복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은 온유함과 인자함을 갖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만큼이나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도 다툼 보다는 양보하고 평화를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울과도, 압살롬과도 전쟁을 회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가롯 유다의 발을 씻기고, 자신을 잡으러 온 말고의 귀를 고치신 분이셨습니다. 즉, 성경은 “하늘의 마음을 실천하는 자가 진정으로 복된 자” 임을 반복적으로 말씀해 줍니다. 비록 세상의 관점으로 보자면 지는 것 같고 양보만 하는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 인류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믿음을 붙잡으면 선한 마음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준비해 주실 하늘의 상급이 큽니다. 그럼, 다른 사람이 시기심과 자기중심적 태도로 우리를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이처럼 우리가 관계적 피해자일 때 성경은 할 수 있는 한 포용하라고 권면합니다. 특히나 교회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신앙과 인격이 미성숙한 사람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성숙한 신앙인은 자기 본위적이기 때문에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정이’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들을 교회 공동체에게 맡겨 주셔서 성숙을 경험하게 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다른 공동체원들이 받는 부담감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런 사람을 포용하는 경험을 통해서 공동체가 한 차원 높은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가롯 유다를 끝까지 품으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성숙을 닮아 가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것까지 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마음을 계속 머금고 있으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용서하고 품어 주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내 마음에 불편함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영역이 도전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회피하는 것은 가장 좋지 못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곧 또 다른 지체를 보내실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품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을 때는 그리스도인의 말로 권면해야 합니다. 성경의 권면대로 먼저 개인적으로 만나서 사랑의 말, 온유의 말, 화평의 말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권면까지 상대방이 듣지 않는다면 그 때는 가능한 그 사람과 관계를 멀리 하는 것이 지혜롭겠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자녀가 더 성숙해지길 원하시지만, 이를 위해 우리 감정이 만신창이가 되는 걸 원하지는 않으십니다. 비록 지금은 다 품어내지 못했더라도 끝까지 겸손히 주님과 동행해 가면 언젠가 예전에 품지 못했던 사람도 품을 수 있는 그릇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이런 성숙한 신앙의 길을, 조금 힘들어도,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우리 마음을 지키는 훈련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 당신은 시기와 다툼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편이십니까? 최근 경험을 나눠보세요. 3. ‘시기와 다툼의 마음을 오래 머금고 있는 것은 죄’라는 말에 동의가 되십니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4. 성령님의 마음을 갖도록 훈련하는데 개인적으로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나눠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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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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