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두 번째 소문에 대해 말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중에 음행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아버지의 아내(계모)를 취한 근친상간의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죄는 유대법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레 18:8),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도 정죄되는 성적 범죄입니다. 바울은 성적 범죄도 심각하게 여기지만, 이런 일을 가볍게 여기고 그 형제를 치리하지 않은 교회 공동체도 교만하다고 여겨 책망합니다. 바울은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교린도 교회와 함께 있어 해당 형제를 이미 판단했다고 말합니다. 이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어 육신을 멸하게 했는데, 이는 (이것의 궁극적 목적은) 그 형제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토록 죄에 대해 단호한 이유는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는 누룩없는 자이지만, 그러나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을 제하고 순전함과 진실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울은 신자가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의 사람들(음행하는 자들, 탐하는 자들, 속여 빼앗는 자들, 우상 숭배자들)과 아예 교제를 안 할 수는 없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형제와 자매라 일컫는 자가 죄를 지으면(음행, 탐욕, 우상숭배, 모욕, 술 취함, 속여 빼앗음) 함께 교제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바울은 교회 밖의 사람들은 그들의 악행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교회 안의 사람들의 악행은 공동체의 거룩과 성결을 위해 교회가 단호히 대처할 것을 말씀합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6)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7)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8)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 믿음의 공동체를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깨끗이 씻어주소서. 저 자신이 성적 범죄와 유혹으로부터 거룩과 성결을 지키도록 도와주소서. 순간순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떠올리며 살게 하시고, 저의 구별된 삶으로 세상에 복음의 빛을 밝히 비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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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의 복음 사역을 부모가 자녀를 낳는 일로 묘사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많은 스승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스승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듯이, 바울 일행은(사도들은) 성도들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며 섬겼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하지만, 사도들은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합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가 없으며,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하고, 모욕을 당합니다. 박해를 받으면서 참고, 비방을 받으면서 권면합니다. 사도들은 마치 죽임을 당하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놓였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사도들의 희생) 언급하는 이유는 이로 인해 고린도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들에게(바울의 사랑하는 자녀 같은 이들에게) 강한 권고(경계)를 주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본받기 원합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 자신의 삶의 모습을(가르침에 일치하게 사는 삶)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게 되면 교만한 자들(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말이 아닌 그들의 능력을 확인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갈 때 매를 가지고 갈지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갈지 묻습니다. 즉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그의 방문 전에 미리 회개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5-16)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0)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복음을 위한 사명의 삶이 힘들고 고난이 많을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며 감당하기 원합니다. 주님을 본받는 삶,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제 안에 아버지의 마음을 부으셔서 주님이 맡기시는 한 영혼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품고 돌보고 양육하게 하소서” 오늘 본문말씀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1-2절은 일꾼의 자세, 3-5절은 판단의 문제, 6-8절은 교만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1-2절에서 바울은 바울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합니다. 충성의 원어적 뜻은 ‘믿음직하고, 신뢰할 수 있고, 진실된’ 입니다. 한문의 충성 忠 자는 가운데 中자에 마음 心자를 써서, 마음의 중심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진실된 사람입니다.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실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충성이고, 그것이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바입니다. 3-5절에서 바울은 판단하는 문제를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원칙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로, 다른 사람의 판단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동기는 내가 믿는 믿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자기 스스로도 판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스스로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작은 실수나 연약함에 연연하거나 묶이는 사람들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은 주께서 판단하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판단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철저히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할 때, 공동체가 살고 나의 영적 성숙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6-8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지금 갖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이어서, “그런데, 왜 마치 원래 너희 것이었던 것처럼 자랑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누리는 삶, 생명, 우리가 일하는 일터, 삶의 기본적인 의식주,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문화생활, 재정, 심지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재능, 헌신의 마음… 이 모든 것들은 다 우리를 지으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인정할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왕이 아닌데 왕노릇하는 것은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사탄이 가장 쉽게, 자주, 반복해서 사용하는 무기는 바로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로 온 것입니다. 그것을 진실되게, 충성되게, 겸손하게 주님 위해 사용하는 귀한 AKPC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부족한 저희를 일꾼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비밀을 담당하는 자로 불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겸손과 낮아짐으로 당신께서 베푸신 것을 충성되게 사용하는 주의 백성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고린도전서는 바울 자신이 고린도에서 1년 반 동안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수고하다가, 그 곳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도들을 돌아보고 격려하기 위해 보낸 서신입니다. 무엇보다도 고린도전서는 ‘실제적인 믿음 생활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데, 바울이 이 서신을 쓴 이유가, 고린도 교회가 겪고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믿음의 관점에서 바르게 권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넓은 관점에서 볼 때, 그 당시의 고린도의 상황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자신들의 믿음의 생활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될 것입니다.
1절 말씀에, ‘형제들아..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이 많이 언급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지혜’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유독 ‘지혜’라는 말을 많이 언급하는 이유는 고린도라는 지역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기에 2절에 말씀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라고 그의 사역에서의 본질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그 외에는 더 드러내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5절 말씀에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는 것은 믿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로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것은, 7절에 의하면, 은밀한 가운데 감추어졌던 비밀 같은 것인데, 택한 백성된 우리를 위하여 만세 전에 정하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 대로 전도는 인간의 설득력 있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이성과 지식을 초월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만 된다는 것을 절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 존재 가치, 존재 의미는 오직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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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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